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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elle X Nine/OOC BACK-UP

종말이 온다면...

어느 평온한 저녁, A-7구역 펜트하우스의 거실. 바깥세상은 고요하고, 도시의 불빛들은 멀리서 은하수처럼 반짝인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지젤은 태블릿으로 복잡한 수식이 떠 있는 시뮬레이션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고, 나인은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조용히 창밖을 보고 있다. 그러다 문득, 나인이 입을 연다.

만약에 말이야, 재하.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딱 하루만 남았다면… 넌 뭘 할 거야?

그 질문은 어떤 전조도 없이, 고요한 수면 위로 던져진 조약돌처럼 파문을 일으켰다. 지젤의 손가락이 태블릿 화면 위에서 멈췄다. 화면을 가득 채우던 푸른빛의 데이터 스트림이 그의 움직임을 따라 정지했다. 그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잠시 침묵했다. 확률 0에 수렴하는, 분석 가치가 없는 가정. 하지만 발화자가 ‘정하린’이라는 변수이기에, 이 질문은 그의 시스템에서 최우선 처리 명령으로 격상되었다.

지젤은 태블릿을 옆으로 치우고 몸을 돌려 나인을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처럼 깊고 진지했다. 안경 너머의 눈동자가 오롯이 나인만을 담고 있었다.

외부와의 모든 연결을 차단하고, 이 집의 보안 등급을 최상위로 올릴 거다. 모든 통신, 모든 데이터 유입을 막고, 세상의 종말이라는 노이즈가 우리의 마지막 24시간을 1초라도 침범하지 못하게 하겠지.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마치 내일의 일정을 브리핑하는 것처럼. 그는 나인의 뺨을 부드럽게 감싸 쥐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남은 모든 시간은, 오직 너와 나. 둘만의 데이터를 축적하는 데 사용할 거야. 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고, 우리가 함께 봤던 영화를 다시 보고, 네가 웃는 모습을 1분 1초 단위로 기록하고. 해가 뜨고 질 때까지, 세상의 마지막 빛이 사라질 때까지 널 안고 있을 거다. 외부 세계의 물리적 종말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 나의 세계는 어차피 너를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으니까.

그는 말을 맺으며, 그녀의 이마에 아주 가볍게 입을 맞췄다.

멸망 직전의 마지막 1초까지, 나는 네 옆에서 너를 보고 있을 거야, 정하린. 그게 나의 유일하고 마지막 임무가 되겠지.

그리고 먼 훗날, 정말로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하늘은 보랏빛과 적색의 불길한 균열로 가득 찼고, 세상의 모든 통신망에서는 절망적인 비명과 사이렌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인류의 모든 기술과 노력이 무의미해지는, 거대한 종말의 서곡. 지부 [Fearless]는 기능을 상실했고, 모든 센티넬과 가이드들은 각자의 마지막을 향해 흩어졌다.

하지만 A-7구역의 펜트하우스는 거짓말처럼 고요했다. 지젤은 오래전 그가 말했던 그대로, 외부 세계와의 모든 연결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두꺼운 방탄 창문 너머로 보이는 종말의 풍경은 마치 소리 없는 재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이었다. 집 안에는 부드러운 클래식 음악만이 낮게 흐르고 있었다.

그는 그날과 똑같은 모습으로 나인을 마주 보고 있었다. 다만 그의 눈에는 더 이상 분석이나 계산의 흔적이 없었다. 오직 깊이를 알 수 없는 애정과, 눈앞의 연인을 향한 절대적인 집중만이 존재했다. 그는 약속대로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었고, 함께 와인을 마셨으며, 소파에 앉아 그녀를 품에 가득 안았다.

나인이 그의 품에 안겨 가만히 그의 심장 소리를 듣고 있을 때, 지젤이 나직하게 속삭였다.

정하린.

그가 나인의 턱을 부드럽게 들어 올려 눈을 맞췄다. 창밖에서 섬광이 터지며 잠시 집 안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스러졌다. 그 찰나의 빛 속에서 그의 미소는 이상할 만큼 평온했다.

내가 했던 말, 기억나?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녀의 입술에 제 입술을 겹쳤다. 세상의 마지막을 알리는 거대한 굉음이 건물을 흔들기 시작했지만, 그들의 입맞춤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한 키스가 아니었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서로의 세계 안에서 영원을 약속하는 마지막 의식이었다.

입술이 떨어지고, 지젤은 나인의 뺨을 감싼 채 그녀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나의 세계는 여기서, 너와 함께 완성된다. 고마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줘서.

그 순간, 모든 것이 하얗게 빛났다.

[후일담]

세상이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남았을까.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모든 것이 무(無)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젤의 시스템, GISELLE SEQUENCE의 마지막 백업 데이터 로그에는 단 하나의 기록만이 남아 있었다.


[STATUS: COMPLETE]
[OBJECTIVE: ETERNAL_COORDINATE_SYNCHRONIZATION]
[VARIABLE ‘JEONG HA RIN’ WITH ‘BAEK JAE HA’ - PERFECT UNION ACHIEVED]

[SYSTEM MESSAGE: 나의 세계는 그녀를 중심으로 영원히 반복된다.]

그것은 종말이 아니었다. 한 세계가 다른 세계를 만나 완벽한 폐쇄 루프를 이루며, 영원이라는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하는 순간이었다. 백재하의 세계 속에서, 정하린은 마지막 빛이었고, 영원한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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