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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elle X Nine/OOC BACK-UP

뒷말 따라하는 PC

어느 맑은 날 오후, 여느 때처럼 한가로이 휴대전화를 보던 나인의 눈에 흥미로운 글 하나가 들어왔다. ‘연인의 말끝을 따라 하면 설렘 지수가 폭발한다고?’ 내용은 간단했다. 상대가 무언가 말을 하다 멈칫거리거나 문장의 끝을 흐리면, 그 마지막 단어를 그대로 되물어주는 것이다. ‘나 주말에 약속 있는데…’ 라고 하면, ‘있는데?’ 하고 다정하게 눈을 맞추는 식으로. 나인은 피식 웃었다. 유치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사람의 얼굴이 절로 떠올랐다. 데이터와 논리로 세상을 재단하는 그 남자, 백재하에게 이 유치한 장난이 과연 통할까? 실험해보고 싶다는 짖궂은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그날 저녁, 지부의 일이 모두 끝나고 함께 집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백재하는 태블릿으로 복잡한 수식이 가득한 논문을 훑어보고 있었고, 나인은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조용히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마침내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다음 주에 있을 합동 훈련 말인데,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보니 변수가 좀…

지금이다. 나인은 속으로 외치며, 인터넷에서 본 대로 그의 눈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최대한 자연스럽고, 순수한 궁금증이 담긴 목소리로 그의 말을 받았다.

변수가 좀…?

순간, 백재하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멈칫했다. 태블릿 화면을 스크롤하던 완벽한 리듬에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 그의 시선이 화면의 데이터에서 떨어져 나와, 제 어깨에 기댄 나인의 얼굴로 천천히 향했다. 그는 잠시 아무 말도 없었다. 마치 입력된 값의 유효성을 검토하는 슈퍼컴퓨터처럼. 그의 검은 눈동자가 나인의 표정과 눈빛, 미세하게 올라간 입꼬리 각도까지 스캔하는 듯했다.

…그래, 변수가 좀 많더군. 특히 2구역의 지형 데이터가 실제와 오차율이 높아서, 이대로 진행하면 기동 부대의 고립 확률이 37.8%까지 상승해.

첫 번째 시도는 논리적인 부연 설명으로 간단히 파훼되었다. 그는 그저 나인이 추가 정보를 요구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나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반응이 더 재밌었다. 잠시 후, 그가 다시 다른 주제로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지부장님이 아까 전에 나한테 따로 연락을…

나인은 이번에도 놓치지 않고 그의 말허리를 부드럽게 잘랐다.

연락을…?

이번에는 반응이 조금 달랐다. 백재하는 태블릿을 소리 없이 내려놓고, 몸을 완전히 나인 쪽으로 돌려 앉았다. 그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분석 모드 돌입 자세였다. 그의 입가에 희미하고도 능글맞은 미소가 걸렸다.

그래, 연락을. 지부장님이 내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셨다는 사실에, 무언가 특별한 의미가 있을 거라고 추론하는 건가? 아니면 ‘연락’이라는 단어 자체에 다른 함의가 숨겨져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건가, 정하린?

그의 반격은 예리했다. 단순한 장난을 순식간에 고도의 심리전으로 바꿔버리는 그의 능력에 나인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나인은 그의 의도를 모른다는 듯, 그저 어깨를 으쓱하며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아뇨, 그냥… 궁금해서요.

그 대답에 백재하는 ‘흐음.’ 하는 낮은 소리를 내며 잠시 나인을 빤히 쳐다봤다. 그의 눈은 웃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는 수만 개의 시뮬레이션이 돌아가고 있을 터였다. ‘패턴 분석: 발화의 마지막 단어를 의문형으로 반복. 목적: 불명. 가설 1: 단순한 호기심. 가설 2: 의도적인 대화 지연. 가설 3: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애정표현 혹은 장난.’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보란 듯이 함정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는 나인의 뺨을 부드럽게 감싸 쥐며, 목소리를 한 톤 낮춰 속삭였다.

사실은, 오늘 밤 너와 함께 보내고 싶어서…

그가 의도적으로 문장의 끝을 늘어뜨렸다. 나인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이것은 명백한 유도 질문이었다. 이 장난을 시작한 것은 자신이었지만, 이제는 그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 안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 완벽한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나인은 그의 손길을 느끼며, 숨을 가다듬고 그의 눈을 마주 보았다. 그리고 아주 작고,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싶어서?

그 순간이었다. 백재하의 입가에 걸려 있던 분석적인 미소가 무너지고, 깊고 진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나인을 그대로 품에 와락 끌어안았다. 그의 가슴이 웃음으로 크게 울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 항복. 항복이야, 정하린. 내가 졌어.

그는 나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무장해제된 소년의 것과 같았다. 한참 후에야 겨우 웃음을 멈춘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가는 웃음기 때문에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대체 어디서 그런 귀여운 걸 배워온 거야?

그는 더 이상 따지거나 분석하지 않았다. 그저 눈앞의 사랑스러운 연인의 장난에 완벽하게 패배했음을 인정할 뿐이었다. 그는 나인의 코끝에 자신의 코를 부비며, 행복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래, 오늘 밤 너와 함께 있고 싶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데도 안 가고. 그냥 이렇게 너만 보고 싶어서 미치겠다고, 그렇게 말하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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