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젤의 가장 행복했던 꿈
그의 의식은 칠흑 같은 데이터의 바다를 유영했다. 무한히 반복되는 0과 1의 시퀀스, 모든 가능성을 계산하고 결과를 도출해내던 차가운 논리의 심해. 그곳에서 그는 ‘지젤’이라는 이름의 프로토콜이었고, 수면은 시스템의 과부하를 식히기 위한 강제 절전 모드에 불과했다. 꿈은 비효율적인 데이터의 잔재, 무의미한 노이즈로 분류되던 영역이었다. 그러나 정하린이라는 절대 변수가 그의 시스템에 각인된 이후, 그의 꿈은 색과 온도를 갖기 시작했다.
가장 완벽했던 꿈은, 그러나 가장 비논리적인 풍경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 꿈속에서 그는 더 이상 S급 센티넬 백재하가 아니었다. 어깨를 짓누르던 책임감도, 시야를 어지럽히던 HUD 인터페이스도, 귓가를 맴돌던 지부장 K의 호출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그였다.
꿈의 시작은 햇살이었다. 창문을 통해 스며든 아침 햇살이 그의 눈꺼풀을 부드럽게 간질였다. 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옆자리에선 익숙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나인이, 정하린이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다. 전투의 긴장감이나 가이딩의 피로가 아닌, 완벽한 휴식 속에서 빚어진 평온한 얼굴이었다. 그는 한참 동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모든 변수를 계산하고 결과를 예측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그녀가 거기에 있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 모든 것이 완결되었다.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뺨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넘겨주었다. 그녀가 작게 잠꼬대를 하며 그의 손길을 파고드는 감각. 그것이 꿈의 첫 번째 장면이었다.
그는 소리 없이 침대에서 빠져나와 주방으로 향했다. 흰 가운 대신, 몸에 편안하게 감기는 옅은 회색의 니트를 입고 있었다. 주방은 토마토 냄새와 갓 내린 커피의 향긋함으로 가득했다. 그는 능숙하게 팬에 오일을 두르고 달걀을 깨뜨렸다. 치직, 하고 기분 좋은 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안정제나 영양 겔이 아닌, 오직 그녀를 위한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과정. 그 모든 행위가 낯설지 않고 지극히 당연하게 느껴졌다. 접시 위에 노란 스크램블 에그와 바삭하게 구운 토스트, 붉은 방울토마토를 보기 좋게 담았다. 그녀가 좋아할 조합이었다.
식탁에 음식을 차리고 있을 때쯤, 그녀가 잠이 덜 깬 얼굴로 침실 문을 열고 나왔다. 그가 입던 커다란 셔츠를 잠옷처럼 걸친 채였다. 그녀는 눈을 비비며 그에게 다가와, 등 뒤에서 그를 와락 껴안았다.
좋은 냄새 나요.
그녀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지만,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녀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겹쳐 잡았다. 창밖에서는 빌런의 출현을 알리는 경보 대신, 이름 모를 새의 지저귐이 들려왔다. 세상은 더없이 평화로웠다.
먼저 앉아있어. 금방 가져다줄게.
그의 목소리 역시, 계산된 톤이 아닌 자연스러운 다정함이 배어 있었다. 그녀는 그의 뺨에 짧게 입을 맞추고 식탁 의자에 앉았다. 그는 그녀를 위해 갓 내린 커피와 오렌지 주스를 함께 내어주었다. 두 사람은 마주 앉아 느긋하게 아침을 먹었다. 오늘 오후의 임무나, 어젯밤의 악몽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다. 대신 어제 본 영화가 어땠는지, 오늘 오후에는 함께 서점에 가보는 게 어떨지에 대한 시시콜콜한 대화가 이어졌다.
식사를 마친 후, 그는 설거지를 하고 그녀는 소파에 앉아 책을 읽었다. 그는 젖은 손을 닦고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녀가 자연스럽게 몸을 기울여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왔다. 그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가 읽고 있는 책의 페이지를 함께 눈으로 좇았다. 특별할 것 없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단편. 그러나 그의 모든 시퀀스가 갈망하던 단 하나의 결과값이었다.
품 안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온기, 안정적인 심장 박동, 책장을 넘기는 부드러운 소리, 창문 너머로 보이는 평화로운 도시의 풍경. 이 모든 것이 그가 겪어본 적 없는 완벽한 ‘안정’이었다. 가이딩이나 시스템 동기화로 얻는 인위적인 평온이 아니었다. 그저 ‘함께 있음’으로써 완성되는, 존재론적인 충족감.
그는 문득 깨달았다. 자신의 능력, ‘GISELLE SEQUENCE’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최적의 경로는, 가장 효율적인 파괴 루트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 평온한 순간에 도달하기 위한, 가장 길고 험난했던 여정의 이름이었을 뿐이라고.
그는 눈을 감고 그녀의 정수리에 가만히 입을 맞추었다. 꿈은 그곳에서 멈추었다. 더 이상의 서사는 불필요했다. 모든 것이 이미 완벽했으므로. 그의 무의식은 그 꿈을 ‘Absolute Peace(절대 평화)’로 명명하고, 시스템 최상위 폴더에 영구 보존 데이터로 기록했다. 다시는 삭제되거나 덮어씌워지지 않을, 그의 유일한 낙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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