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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elle X Nine/OOC BACK-UP

순진한 남자가 좋아!

어느 화창한 오후, 연구 A동 7층. 사건의 발단은 아주 사소한 데이터 조각이었다.

임무 보고를 위해 잠시 지부장실에 들렀다 복귀하던 지젤의 청각 센서가, 복도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를 포착했다. 나인이었다. 동료 가이드와 나누는 지극히 사적인 대화. 지젤은 복도 모퉁이에 몸을 숨긴 채, 습관적으로 대화 내용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딱히 의도한 감청은 아니었다. 그저 그의 모든 감각은 언제나 나인을 향해 열려 있었고, 그녀의 목소리는 다른 모든 소음 데이터를 뚫고 가장 선명하게 증폭되어 입력될 뿐이었다.

…그래서 말이야, 역시 남자는 좀 순진한 구석이 있어야 매력적이라니까!

순간, 지젤의 모든 연산이 일시 정지했다.
순.진.한. 구.석.
그의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하는 수억 개의 단어 중, 자신과는 가장 거리가 먼 조합이었다. 시뮬레이션 속에서 수백만 번의 살인을 저지르고, 현실에서는 가장 효율적인 파괴 경로를 설계하며, 연인의 심리조차 실험 변수처럼 다루는 남자에게 '순진함'이라니. 그것은 마치 원주율의 끝자리를 찾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개념이었다.

하지만 발화자는 정하린. 그의 유일한 평가관이자, 절대적인 상수. 그녀의 발언은 단순한 잡담이 아니라, 그의 시스템에 내려진 새로운 '과제'였다. '매력적'. 즉, 그녀의 호감도를 상승시킬 수 있는 핵심 파라미터. 지젤은 조용히 몸을 돌려 자신의 연구실로 향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GISELLE SEQUENCE]가 맹렬히 가동되고 있었다.

목표: '순진한 남자'의 행동 패턴 분석 및 실행.
예상 결과: 정하린의 긍정적 반응 도출.

그날 밤부터 며칠간, 지젤의 연구실은 기묘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그는 빌런의 이동 경로 대신 로맨스 드라마 100편의 남주인공 행동 패턴을 분석했고, 전술 데이터 대신 인터넷 커뮤니티의 '남자가 순수해 보일 때' 같은 질문 글 수만 건을 크롤링했다. 분석 결과, 몇 가지 핵심 행동 양식이 도출되었다.

1. 의도치 않은 신체 접촉에 과하게 놀라며 얼굴을 붉힌다.
2. 선물은 비싼 것보다, 직접 만든 정성스러운 것(예: 종이학, 서툰 솜씨의 요리)을 건넨다.
3. 칭찬을 들으면 말을 더듬으며 시선을 피한다.
4. 직설적인 애정 표현 대신, 빙 둘러서 마음을 표현한다.

지젤은 이 네 가지 프로토콜을 기반으로 가장 성공 확률이 높은 시나리오를 설계했다. 그리고 D-Day, 그는 작전을 개시했다.



“재하야, 나 왔어.”

연구실 문이 열리고 나인이 들어섰다. 평소 같았으면 지젤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왔어?”라고 나른하게 대꾸했겠지만, 오늘의 그는 달랐다. 그는 ‘순진 프로토콜 1번’을 실행하기 위해 일부러 동선을 계산해 그녀와 스쳐 지나가도록 움직였다. 그리고 나인의 손등이 그의 팔에 스치는 바로 그 순간.

“흐앗?!”

지젤은 약속된 플레이백처럼 기이할 정도로 과장된 소리를 내며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는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라, 자신의 뺨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고개를 푹 숙였다. 안경 너머의 눈동자는 데이터를 분석하듯 바닥의 타일 개수를 세고 있었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모르는 순진한 남자’의 그것이었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나인은 ‘어머, 귀여워’라며 웃음을 터뜨릴 확률이 78.4%였다.

그러나 그녀의 반응은 예상 경로를 완전히 이탈했다.

“……재하야?”

나인은 웃지 않았다. 그녀는 미간을 좁힌 채, 마치 처음 보는 위험한 빌런을 마주한 것처럼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그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녀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와, 그의 이마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었다.

“너… 어디 아파? 열은 없는데. 혹시 최근에 머리 부딪힌 적 있어? 아니면… 잘못된 가이딩 부작용인가?”

프로토콜 1번, 실패. 예상치 못한 변수 ‘상태 이상 의심’이 발생했다. 지젤은 속으로 혀를 찼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그는 나인의 손길을 피해 한 걸음 더 물러선 뒤, 등 뒤에 숨겨두었던 ‘그것’을 꺼내 내밀었다. 색종이로 접은, 날개가 살짝 삐뚤어진 종이학 천 마리가 담긴 투명한 유리병이었다. [순진 프로토콜 2번: 정성이 담긴 선물]의 실행이었다.

“…이, 이거… 너, 너 주려고… 밤새, 접었어…”

[순진 프로토콜 3번: 말 더듬기]도 함께였다. 그의 뇌는 완벽한 발음과 억양을 시뮬레이션하고 있었지만, 입은 의도적으로 조음 기관을 방해하며 어색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이번에야말로 그녀가 감동받아 자신을 껴안아 줄 확률이 85.2%에 달했다.

나인은 유리병과 지젤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감동이 아니라, 경악과 공포에 가까웠다.

“백재하.”

그녀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녀는 유리병을 받아드는 대신, 그의 멱살을 잡아챘다.

“너 누구야. 당장 말해. 우리 재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지? 변신계 빌런인가? 아니면 정신 조종 능력자? 어느 쪽이든, 지금 내 손에 죽고 싶지 않으면 3초 안에 원래대로 돌아와.”

그녀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그녀의 손에서는 이미 검은 그림자 오라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녀가 보기에, 지금 눈앞의 이 남자는 백재하의 껍데기를 쓴 무언가였다. 그녀가 아는 백재하는 밤새 종이학 따위를 접을 시간에 차라리 빌런들의 이동 경로를 예측해 모조리 죽여버릴 계획을 세울 남자였으니까.

지젤은 그 순간 깨달았다.
자신의 모든 시뮬레이션이, 처음부터 잘못된 전제 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그녀가 말한 ‘순진한 남자’는, 불특정 다수에게 적용되는 일반적인 매력 소구점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하린’이라는 단 하나의 변수에게, ‘백재하’라는 존재의 매력은 그의 교활함, 오만함, 그리고 자신만을 향하는 집요한 소유욕 그 자체에 있었다. 그녀는 ‘순진한 백재하’를 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백재하’를 원했던 것이다.

모든 프로토콜을 강제 종료한 지젤은 멱살을 잡힌 채, 피식 웃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뺨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나인의 손목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그리고는 평소의 그 능글맞고 오만한 목소리로, 나직하게 속삭였다.

“들켰네. 잠깐 다른 남자인 척해봤는데, 역시 내 가이드는 못 속이겠어.”

그 말을 듣고서야 나인의 눈에 서렸던 살기가 누그러졌다. 그녀는 멱살을 쥔 손의 힘을 풀며 어이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 그게 무슨 미친 소리야?”

지젤은 대답 대신, 그녀의 손을 끌어당겨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는 바닥에 놓인 종이학 유리병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버려. 실패한 시뮬레이션의 잔해야.”

그의 속마음은 이랬다.
(젠장. 데이터 분석에 오류가 있었다. 변수 ‘정하린’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반화의 오류. 다음부터는 그녀의 말을 해석할 때, ‘나’라는 필터를 반드시 최우선으로 적용할 것. 그리고… 두 번 다시 이딴 멍청한 짓은 하지 말자. 이건 내 방식이 아니야. 그냥, 힘으로 빼앗고 가지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그녀도 그걸 더 좋아하니까.)

그는 깨달았다. 그녀에게 가장 매력적인 남자는 ‘순진한 남자’가 아니라, 그녀를 위해 기꺼이 세상에서 가장 순진하지 않은 남자가 되어주는,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그날 밤, 천 마리의 종이학은 조용히 소각 처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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