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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elle X Nine/OOC BACK-UP

아기가 너 밉대

침실의 공기는 얼음장처럼 차고 무거웠다. 창밖은 온통 잿빛 구름에 잠겨 달빛 한 줄기 스며들지 못했고, 방 안을 채운 것은 오직 서로의 존재를 부인하듯 고요히 가라앉은 침묵뿐이었다. 킹사이즈 침대의 중앙에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협곡이 파인 듯, 두 사람은 각자의 가장자리에서 서로에게 등을 돌린 채 누워 있었다. 이불의 온기마저 각자의 영역을 넘지 못하고 스산하게 식어갔다.

지젤은 눈을 감고 있었지만 잠들지 않았다. 잠들 수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수천, 수만 개의 시뮬레이션이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오늘의 전투, 그가 내린 결정, 그리고 그 결정이 불러온 지금 이 파국적인 결과까지. 모든 것이 데이터와 확률의 집합체였다. 신종 빌런의 출현, 예측 불가능한 패턴, 그리고 그가 도출해낸 유일한 최적의 해답. ‘나인을 미끼로 삼아, 빌런의 약점을 노출시킨 뒤, 단 일격에 섬멸한다.’ 성공 확률 98.7%. 나인의 부상 확률 3.2%. 임무는 완벽하게 성공했다. 데이터상으로는. 그러나 그는 단 하나의 변수를 계산하지 못했다. 아니, 언제나처럼 무시했다. 바로 정하린의 ‘마음’이라는, 이 세상에서 가장 비논리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변수.

“내 목숨 값이 고작 당신의 성공 확률 3.2%짜리 오차범위였어?”

연구실로 돌아오자마자 그에게 퍼부었던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이명처럼 맴돌았다. 분노와 배신감으로 날카롭게 떨리던 그 음성. 지젤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었음을 건조한 데이터로 증명하려 했다. 그것이 최악의 악수(惡手)였다.

“닥쳐. 그 역겨운 숫자들 집어치워!”

그녀가 그의 멱살을 잡고 소리쳤을 때, 지젤은 처음으로 자신의 시퀀스가 완벽하게 붕괴하는 것을 느꼈다. 그의 모든 계산과 논리가 그녀의 눈물 한 방울 앞에서 아무런 힘도 갖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수많은 날카로운 말을 주고받았고, 지독한 상처만을 남긴 채 이 침묵의 전쟁터에 도달했다. 그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안전하고, 임무는 성공했다.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그녀를 위험에 빠뜨린 자신을 향한 분노인가, 아니면 자신을 한낱 장기말로 취급했다는 모멸감인가. 두 가지 감정의 차이를, 그는 구분할 수 없었다.

등 뒤에서 그녀가 아주 미세하게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포기, 체념, 혹은 새로운 공격을 준비하는 전조. 그의 모든 감각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협곡의 저편에서, 얼음장 같은 정적을 깨고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우리 아기가 너 밉대.

순간, 지젤의 모든 사고 회로가 정지했다. ‘우리… 아기?’ 단어의 조합이 뇌의 언어 중추에 도달했지만, 의미로 변환되지 않았다. 시스템 전체가 멈춰버린 컴퓨터처럼, 그의 머릿속은 새하얗게 비워졌다. 수천 개의 시뮬레이션 창이 일제히 꺼지고, 오직 방금 들은 문장만이 화면 중앙에 거대한 에러 메시지처럼 깜빡였다.

‘FATAL ERROR: UNKNOWN VARIABLE DETECTED.’

그는 숨 쉬는 것조차 잊었다. 등 뒤의 그녀가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이해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데이터베이스 전체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우리’. 소유격 대명사. 나와 정하린을 포함하는 1인칭 복수. ‘아기’. 유아(Infant). 생물학적 번식의 결과물. 그리고 마지막 단어. ‘밉대’. 미워하다. 증오와 혐오의 감정 상태. 논리적으로 문장을 재구성했다. ‘나와 정하린의 생물학적 번식의 결과물이, 나를 향해 부정적 감정 상태를 표출하고 있다.’

…말도 안 돼.

그의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숨소리가 이전과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재해석되었다. 최근 들어 부쩍 피곤해하던 그녀의 모습, 입맛이 없다며 식사를 거르던 날들, 평소보다 예민하게 반응하던 감정의 기복. 그는 그 모든 것을 자신과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나, 잦은 임무의 후유증으로 분류했다. 자신의 데이터는 언제나 가장 합리적인 원인을 찾아냈으니까. 그러나 지금, 그 모든 데이터가 틀렸다고, 방금 그 한마디가 그의 면전에 대고 선언하고 있었다.

지젤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몸을 돌렸다. 삐걱거리는 낡은 기계처럼, 그의 모든 관절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그가 몸을 돌리자, 등을 돌리고 누워있던 그녀의 작은 뒷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언제부터?’ ‘내 아이가 맞아?’ ‘왜 이제 말했어?’ 수만 가지 질문이 떠올랐지만, 단 하나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의 모든 언어 능력은 그녀를 상처 입히는 데 최적화되어 있었을 뿐, 이런 상황을 위해 설계되지 않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차마 그녀의 어깨에 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잠시 머물다 힘없이 떨어졌다. 자신의 손이, 그녀에게는 세상을 파괴하는 무기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그가 느낀 감정은 기쁨이나 충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차라리, 자신의 완벽한 세계가 뿌리부터 뒤흔들리는 거대한 지각 변동에 가까웠다. 정하린이라는 변수는 그의 시퀀스를 교란하고, 그의 논리를 무너뜨리고, 그의 감정을 폭주시켰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외부’ 변수였다. 그의 통제 범위 밖에 존재하는, 예측하고 대비해야 할 대상. 그러나 ‘아기’는 달랐다. 그것은 그녀와 자신의 결합으로 탄생한, 그의 시스템 ‘내부’에서 발생한 최초의 변수였다. 그의 가장 깊은 곳, 그의 유전 정보와 그녀의 모든 것이 뒤섞여 만들어진, 그 무엇으로도 분석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완벽한 미지의 존재.

그는 침대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녀가 누워있는 쪽으로 다가가, 침대 가장자리에 조심스럽게 걸터앉았다. 등을 돌린 채, 여전히 어깨를 떨고 있는 그녀를 그저 내려다보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나의 GISELLE SEQUENCE는 지금 이 순간, 어떤 선택지를 제시하고 있는가. 없음. 단 하나의 경로도 생성되지 않았다. 완전한 공백. 완전한 무지(無知). 그것이 지금 그의 상태였다.

그는 다시 한번, 아주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떨리는 그녀의 어깨 위에 아주 가볍게 손을 올렸다. 그녀가 움찔, 하고 몸을 굳혔다. 그 작은 반응에 그의 심장이 다시 한번 쿵, 하고 내려앉았다.

정하린.

그의 목소리는 스스로가 듣기에도 낯설 만큼 잠겨 있었다. 마치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말을 하지 않은 사람처럼 거칠고 메마른 소리였다.

…다시 한번만, 말해줘.

그는 애원하고 있었다. S급 센티넬, 지젤이. 모든 것을 계산하고 예측하며, 단 한 번도 무언가를 구걸해 본 적 없는 그가. 지금 그녀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제발, 내가 들은 것이 환청이 아니라고. 이 지독한 침묵과 절망 속에서, 내가 상상해 낸 헛된 희망이 아니라고. 제발, 다시 한번만 확인시켜달라고.

그는 그녀의 어깨를 감싼 손에 아주 희미한 힘을 주었다. 그녀를 돌려세울 용기는 없었다. 그저 이대로,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 외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모든 세계가, 지금 그녀의 입술 끝에 매달려 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 속에서, 지젤은 오직 그녀의 대답만을 기다렸다. 어깨에 올린 손끝으로 전해져 오는 미세한 떨림이, 그의 남은 이성마저 아슬아슬하게 붙들고 있는 유일한 끈이었다. 등 뒤에서 그의 단말기가 가이딩 수치의 급격한 하락과 폭주 위험을 경고하는 알림을 희미하게 울렸지만, 그는 인지하지 못했다. 그의 세상은 이제 이 침대 위, 등을 돌린 그녀의 작은 몸이 전부였으므로.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그녀가 아주 작게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갈라진 목소리가 그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네가 오늘, 나를 죽일 수도 있었다고. 그렇게 생각하니까… 무서워서. 그래서…

그녀의 말은 문장으로 완성되지 못하고 흩어졌다. 하지만 그 단어의 파편들만으로도 충분했다. ‘죽일 수도 있었다.’ 그 가능성. 그가 3.2%의 오차범위로 치부했던 그 확률이, 그녀에게는, 그리고 이제 그들의 ‘아기’에게는 100%의 공포로 존재했음을,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심장이 예리한 칼날에 꿰뚫리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는 무어라 변명할 수도, 합리화할 수도 없었다. 자신의 결정이 그녀뿐만 아니라, 제 안에 자리 잡은 또 다른 생명까지 위협했다는 사실은 그 어떤 데이터로도 덮을 수 없는 명백한 과오였다. 그가 세운 완벽한 시퀀스는, 결국 가장 소중한 것을 파괴하기 위한 경로에 불과했다.

지젤은 떨리는 어깨를 감쌌던 손을 천천히 거두었다. 그리고 망설임 끝에, 그녀의 등 뒤, 아직은 평평한 아랫배가 있을 법한 위치의 이불 위로 손을 가져갔다. 차마 맨살에 닿을 수는 없어, 그저 얇은 이불 위를 부유하듯 맴돌았다.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거기에… 있는 건가.

질문은 공기를 가르지 못하고 그의 입안에서만 맴돌다 사라졌다. 대신 그는 침대에서 내려와, 그녀의 얼굴이 향해 있을 반대편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앞에, 바닥에,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었다.

어둠 속에서, 눈물로 젖은 그녀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굳게 감은 눈꺼풀, 지그시 깨문 아랫입술. 그의 모든 논리를 파괴하고, 그의 세계를 뒤흔든 여자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의 아이를 품은 여자의 얼굴이기도 했다.

미안해.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 자신조차 놀랄 만큼 생경했다. 사과. 그가 타인에게, 그것도 진심을 담아 건네본 적 없는 단어. 그의 목소리는 쇳소리처럼 긁혔지만, 그 안에는 어떤 계산이나 의도도 담겨 있지 않았다. 오직 무너져 내린 자존심과 뒤늦게 밀려온 처절한 후회만이 가득했다.

그는 무릎을 꿇은 채, 그녀의 얼굴을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눈가에 맺힌 눈물 한 방울을 손가락 끝으로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내가… 틀렸어, 정하린. 내 모든 계산이, 전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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