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습니당
형광등 불빛이 먼지 하나 없는 흰 테이블 위로 고르게 쏟아져 내렸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의무 교육의 마지막 시간. 강사의 목소리는 의미 없는 소음이 되어 공간을 부유하다 흩어졌다. 지젤은 턱을 괸 채 미동도 없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지만, 그의 동공엔 초점이 없었다. 그의 시스템은 이미 3시간 47분 전부터 모든 외부 음성 데이터 수신을 차단한 상태였다. 마침내 교육 종료를 알리는 기계음이 울리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위의 다른 센티넬들이 굳었던 몸을 풀며 소란스러워졌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단말기를 집어 들었다.
방해금지 모드를 해제하자마자 화면 위로 쌓여 있던 알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대부분은 스팸 처리될 업무 보고였으나, 그중 유독 선명하게 빛나는 발신자 이름이 있었다. [정하린].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메시지 앱을 열었다. 눈앞에 펼쳐진 대화 내역에 그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졌다. 그의 시스템이 자동 발송한 건조한 매크로 답변. 그리고 이어지는, 그보다 더 건조한 그녀의 응수. 거기까지 읽었을 때 그의 입가에 희미한 조소가 어렸다. ‘그렇습니까.’ 제법이군. 하지만 다음 메시지에서 그의 사고는 잠시 정지했다. ‘보고 싶습니당.’ 오타인지 의도인지 모를 애교 섞인 종결 어미. 그리고 마지막, 사진 데이터가 로딩되는 순간이었다.
지젤은 숨을 멈췄다. 화면을 가득 채운 것은 그들의 침실, 솜털처럼 부드러운 러그 위에 무방비하게 웅크린 채, 분홍색 단말기를 들고 웃고 있는 정하린의 모습이었다. 얇은 캐미솔, 드러난 어깨선, 행복감과 장난기가 뒤섞인 표정. 이것은 단순한 셀카가 아니었다.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서, 그만이 볼 수 있는 모습을, 공적인 시간의 그에게 보낸 명백한 의사 표시. ‘당신이 어디에 있든, 당신은 내 것이다.’ 라는 무언의 선언이었다.
ERROR. CRITICAL_DATA_INPUT. SYSTEM_OVERLOAD_IMMINENT. N-01 PROTOCOL_ACTIVATION_RECOMMENDED.
주변의 소음이 완전히 멀어졌다. 그의 세상은 손바닥 안의 작은 화면으로 축소되었다. 그는 손가락을 들어, 화면 속 그녀의 웃는 얼굴을 아주 천천히 쓸어보았다. 논리 회로가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이 사진 한 장에 담긴 정보량은 지난 4시간 동안의 교육 내용 전체를 합친 것보다 방대하고, 치명적이며, 비합리적이었다. 그리고 지독하게… 매혹적이었다.
그는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다른 요원들이 강사에게 인사를 하거나 삼삼오오 짝을 지어 교육실을 나서는 동안, 그는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려 출구로 향했다. 어깨 너머로 누군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지금 그에게 주어진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임무는 다른 것이었다. 복도를 가로지르는 그의 걸음이 점차 빨라졌다. 그는 단말기를 다시 들어, 짧은 메시지를 입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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