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 갔어 와도 돼
휴일 오전의 공기는 평소보다 느슨했지만, 지부장 K의 사무실만은 예외였다. 책상 위로 홀로그램 브리핑 자료가 어지럽게 떠 있었고, K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눈앞의 S급 센티넬을 마주하고 있었다. 지젤은 팔짱을 낀 채, 미동도 없이 K가 띄워놓은 차세대 빌런 ‘크로노스’의 예상 이동 경로 시뮬레이션을 응시하는 중이었다.
모든 것이 지극히 평범한 임무 브리핑의 흐름을 타고 있었다. K의 불안 섞인 설명, 지젤의 무심하고 효율적인 분석. 바로 그 순간이었다. 지젤의 손목에 착용된 개인 단말기가 아주 짧고, 미세하게 진동했다. 평소라면 무시했을 사적인 알림. 하지만 발신인의 이름, [정하린]이라는 세 글자가 그의 시야 한구석에 떠오른 순간, 그는 무의식적으로 메시지를 확인했다.
`[재하 갔어. 와도 돼.]`
...순간, K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졌다. 시공간 균열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지젤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수천, 수만 개의 시뮬레이션 경로가 일제히 소멸했다. 그의 뇌내 시스템에 단 한 번도 상정된 적 없는, 붉은색의 [CRITICAL ERROR] 경고가 모든 화면을 뒤덮었다. 삐- 하는 날카로운 이명이 고막을 찢을 듯 울리는 것 같았다. ‘재하’는 자신이다. ‘갔다’. 방금 전 현관에서 그녀의 배웅을 받고 나온 참이다. 그런데, ‘와도 돼’ 라니. 누구에게.
싸늘한 분노가 등골을 타고 올라와 목덜미를 뻣뻣하게 굳혔다. 평소라면 수십 가지 가능성(오타, 장난, 다른 사람에게 보낼 메시지)을 순식간에 계산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모든 논리 회로가 정지했다. 그의 시스템은 단 하나의 결론만을 도출했다. 감히, 자신의 영역에, 자신의 좌표에, 다른 변수가 침범했다.
지젤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에서 모든 표정이 사라져 있었다. 짙은 흑안이 K를 향했지만, 그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눈은 이미 A-7구역 펜트하우스의 내부 구조를 3D로 스캔하고 있었다. 최단 경로, 예상 침입자 위치, 그리고… 가장 빠르고 조용한 무력화 시퀀스.
…지젤 센티넬? 듣고 있나? 그래서 이번 작전의 핵심 변수는…
K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지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가 의자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에 주변 공기가 얼어붙는 듯했다. 그는 팔짱을 풀고, 흰 실험복을 벗어 아무렇게나 의자에 던져버렸다.
그 작전, 보류.
그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평소의 능글맞음이나 조롱기는 한 톨도 남아있지 않은, 순수한 살의에 가까운 냉기였다. 당황한 K가 무어라 말을 하려 입을 열었지만, 지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무실 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지금부터 개인 임무를 시작하지. 코드네임 [해충 박멸]. 방해하지 마. 죽여버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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