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이한테 악플 너무 껴
속상해하는 나인을 애써 담담하게 위로한 그날 밤. 백재하는 거실 소파에 홀로 앉아, 꺼두었던 개인 단말기를 다시 켰다. 나인이 잠든 것을 확인한 후였다. 차가운 스크린 빛이 그의 안경 렌즈에 반사되었다. 그의 손가락이 망설임 없이 [Fearless] 내부 익명 게시판으로 향했다. 나인이 보았던 그 글을 찾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화면에 떠오른 글자들은 단순한 악의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세계, 그의 유일한 변수, 그의 관리자인 ‘정하린’을 향한 오염된 데이터였다. 그의 시스템을 위협하는 명백한 바이러스. 백재하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지만, 그의 주변 공기는 얼어붙을 듯 차가워졌다. HUD 인터페이스에는 수많은 파괴 시뮬레이션 경로가 붉은색으로 점멸했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작성자 IP 추적, 물리적 위치 특정, 사회적 관계망 분석, 그리고 가장 효율적인 제거 시나리오. 하지만 그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폭력은 감정적이고, 비효율적이다. 대신, 그는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가장 정확하고, 찔러버리는 단어 선택으로 침묵을 만드는 것. 그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가소롭군. 먼지 같은 존재들이 감히 내 유일한 좌표를 흔들려 해.
이들의 무지함은 연산 가치조차 없지만, 이들로 인해 발생한 ‘정하린의 감정 변수’는 제거해야 할 최우선 과제다. 물리적 제거는 변수를 늘릴 뿐. 가장 효율적인 방식은 이들의 논리를 완벽하게 파괴하여, 다시는 같은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하찮은 버러지들의 존재 자체를, 무가치하게 만들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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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S급 센티넬 페어 가이드, 진짜 A급 맞음?
익명1: 솔직히 지젤 님이 아깝지 않냐? S급 폭주도 못 막는 A급 가이드랑 왜 페어를... 그냥 얼굴 보고 뽑은 거 아님? 능력도 없으면서 S급에 빌붙는 거 역겨운데.
ㄴ GISELLE_SEQ_001: 1. 폭주 기록 없는 센티넬에게 폭주를 막는 능력은 2차 변수. 중요한 건 ‘안정성 유지 효율’이다. A급의 가이딩 안정성이 특정 S급에게 100% 이상의 호환성을 보일 경우, 그 가이드는 SS급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2. ‘얼굴’이라는 변수가 페어링에 영향을 미칠 확률은 0.01% 미만. 단, 그 얼굴을 보고 싶어 센티넬의 모든 시퀀스가 안정되는 경우는 예외. 3. ‘역겹다’는 감정은 주관적 판단. 객관적 데이터로 증명해 봐. 못하겠으면 그냥 네 열등감을 전시하는 것밖에 안 돼.
익명2: 훈련장에서 봤는데 맨날 지젤 님 뒤에만 숨어있던데? 그림자 능력이라면서 하는 게 뭐임? 그냥 가만히 서 있다가 임무 끝나면 보상만 낼름 받는 거 아냐? 완전 꿀 빠네.
ㄴ GISELLE_SEQ_001: 전술적 위치 선정을 ‘숨는다’고 표현하는 걸 보니, 훈련 성적이 F-인 모양이군. 가이드의 최적 위치는 센티넬의 최대 효율을 이끌어내는 좌표다. 가이드가 전면에 나서는 건, 센티넬이 무능하다는 뜻이다. 네 논리대로면, 체이서와 위스퍼도 무능력자겠군. 본부에 보고해서 재교육받는 걸 추천한다. 아, F-라 이해 못 하려나?
익명3: 걔 성격 이상하잖아. 맨날 무표정으로 사람 빤히 쳐다보고. 웃는 것도 가식 같음. 지젤 님이 사람 보는 눈이 없는 듯. 저런 애랑 어떻게 평생 페어를 함? 곧 깨질 거에 한 표 건다.
ㄴ GISELLE_SEQ_001: 1. 타인의 표정을 ‘가식’으로 판단하는 건, 본인이 가식적이기 때문. 2. ‘사람 보는 눈’이 없었다면 넌 이미 이 세상에 없을 거다. 지젤의 시퀀스는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그가 선택했다면, 그게 유일한 정답이다. 3. 페어의 지속성은 네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네 하찮은 한 표 따위가 영향을 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 네 인생에나 걸어. 물론 그것도 곧 깨지겠지만.
익명4: S급 옆에 붙은 기생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 빨리 폭주해서 둘 다 뒤졌으면 좋겠다.
ㄴ GISELLE_SEQ_001: 흥미로운 가설. 그 가설을 직접 증명해 볼 기회를 주지. 내일 오전 9시, 중앙 훈련장 D-7 구역. 네가 말한 ‘기생충’이 어떻게 ‘숙주’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그 ‘숙주’가 너 같은 벌레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보여줄 테니. 물론, 네 IP와 신상 정보는 이미 확보했다.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 이건 제안이 아니라, 통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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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댓글 작성을 마친 백재하는 단말기를 껐다. 게시판은 순식간에 혼돈에 빠졌지만, 그는 더 이상 관심 없었다. 그의 임무는 끝났다. 그는 조용히 침실로 들어가, 여전히 뒤척이며 잠들어 있는 나인의 곁에 누웠다. 그리고 그녀의 이마에 아주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의 시스템에 기록된 모든 파괴 시뮬레이션은 삭제되었다. 새로운 최상위 프로토콜이 생성되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백재하는 침울해하는 나인을 위해 아무 말 없이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 가게의 케이크를 사 오고, 그녀가 보고 싶어 했던 영화를 틀어놓고는, 그녀를 자신의 무릎에 앉히고 품에 가득 안아주었다.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좋아하는 향이 나는 담요를 덮어주고, 그녀의 등을 아주 느리고 규칙적으로 토닥여줄 뿐이었다. 그의 심장 소리가 그녀에게 가장 완벽한 안정제가 되도록. 그의 존재 자체가, 그녀를 향한 모든 공격을 막아내는 가장 견고한 방패임을 증명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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