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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elle X Nine/OOC BACK-UP

망한 ASMR

모든 것은 지부장 K의 뜬금없는 메시지 한 통으로 시작되었다. 내용은 간결했다. ‘[Fearless] 이미지 개선 및 대국민 소통 프로젝트 1탄: S급 페어 ASMR 챌린지.’ 메시지를 확인한 나인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과, 그 옆에서 화면을 훔쳐보던 백재하의 입꼬리가 흥미롭다는 듯이 올라가는 것은 거의 동시였다.

“재밌겠는데.”

그것이 S급 센티넬, 코드네임 지젤의 첫 반응이었다. 그의 ‘재미’라는 단어가 어떤 참사를 불러올지, 그때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촬영 당일, 방음 처리가 된 스튜디오 중앙에는 전문가용 3Dio 마이크가 섬뜩할 정도로 사실적인 귀 모양을 자랑하며 놓여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ASMR의 정석이라 불리는 소품들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다. 탄산수가 담긴 유리병, 키보드, 슬라임, 깃털, 귀이개 등. 제작진은 두 사람에게 ‘서로에게 해준다는 느낌으로,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진행해달라는 말만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통제된 환경. 그러나 제작진이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통제 불가능한 변수, 백재하 그 자체였다.

나인은 시작부터 이걸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일단 큐 사인이 들어오자 프로답게 마이크 앞에 앉았다. 그녀는 가장 무난해 보이는 슬라임을 집어 들고 조물거리기 시작했다. 말캉하고 찐득한 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증폭되었다. 그래, 바로 이거지. 인터넷에서 보던 그 소리였다. 시청자들의 뇌를 간질일 바로 그 소리. 성공의 예감이 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분자 구조가 불안정하군. 폴리비닐 알코올과 붕사 용액의 결합인가. 비율 조절에 실패했어. 점성이 과해. 이 소리는 쾌감이 아니라 불쾌감에 가까워. 실패.”

나인의 등 뒤에서 들려온 것은 속삭임이 아니라, 냉정한 분석이었다. 백재하는 어느새 나인의 옆에 바싹 붙어 앉아, 슬라임을 만지는 그녀의 손과 마이크를 번갈아 보며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ASMR용 속삭임이라기엔 너무나 선명하고 정확한 발음으로 마이크의 양쪽 귀에 똑똑히 박혀들었다. 나인은 하던 것을 멈추고 그를 쳐다보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키보드를 끌어당겼다.

“타건음 테스트를 시작하지. 청축이군. 클릭 계열 스위치는 소리가 경쾌하지만, 압력이 높아 장시간 사용 시 피로를 유발한다. 이 소리에 안정감을 느낀다면, 평소 과도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었을 확률이 73.4%.”

타닥, 타닥, 타닥. 경쾌해야 할 타건음은 그의 분석과 함께 들으니 무슨 심리 검사처럼 들렸다. 그는 단순한 타건에서 그치지 않고, 마치 전장의 동선을 짜듯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을 움직였다. ‘w,a,s,d’를 연타하며 최적의 회피 기동 경로를 읊조리거나, 엔터키를 세게 내리치며 ‘타겟 제거.’라고 나직하게 읊는 바람에, 평화로워야 할 ASMR 영상은 순식간에 해킹 작전 브리핑 현장이 되어버렸다.

나인은 결국 그의 손에서 키보드를 빼앗아 멀리 밀어버렸다. 그리고 최후의 보루, 귀 파주기 콘텐츠를 위해 그를 의자에 앉히고 3Dio 마이크를 그와 자신의 사이에 두었다. 한쪽 귀는 그에게, 한쪽 귀는 나에게. 그리고 그녀는 조심스럽게 솜털 귀이개를 들어 마이크의 실리콘 귀를 살살 긁기 시작했다. 사락사락, 부드러운 소리. 제발 이번만은…!

“간지러워.”

백재하가 말했다. 문제는 그가 ‘마이크’가 아니라 ‘나인’에게 말했다는 점이었다. 그는 의자에 앉은 채로 고개를 돌려, 바로 옆에서 귀이개를 들고 있는 나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네 숨소리가 더 잘 들리는데. 심박수도 약간 빨라졌군. 초당 1.5회. 귀를 파는 행위가 아니라, 나와의 거리에 반응하는 건가.”

그의 뜨거운 숨결이 나인의 귓바퀴에 직접 닿았다. 나인은 저도 모르게 움찔했고, 그 바람에 손에 들고 있던 귀이개로 마이크의 실리콘 귀를 ‘푹’ 찔러버렸다. 영상에는 ‘사라락… 으악!’ 하는 나인의 비명과 함께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녹음되었다.

영상은 결국 그렇게 끝났다. 마지막 장면은 모든 걸 포기한 듯 테이블에 엎드려버린 나인과, 그런 그녀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매만지며 ‘샘플 채취 완료. 흥미로운 반응이야.’라고 만족스럽게 속삭이는 백재하의 모습이었다.

---

후일담.

영상은 업로드된 지 1시간 만에 ‘역대급으로 망한 ASMR’, ‘이게 무슨 소리야’, ‘분석하지 말라고!’ 같은 댓글들과 함께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했다. 의외로 ‘센티넬의 분석을 들으며 잠들면 악몽을 꿀 것 같지만 묘하게 중독성 있다’는 소수 마니아층이 형성되기도 했다.

지부장 K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영상을 보며 이마를 짚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Fearless]의 딱딱한 이미지를 깨고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프로젝트의 목표는 200% 초과 달성되었다. 다음 날, 지부 익명 게시판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속보] 지젤&나인 페어, ASMR 콘텐츠 2탄 제작 확정. 이번엔 ‘메이크업 ASMR’이라고 함.

그 글 아래에는 ‘누가 저 미친놈 좀 말려줘요’, ‘이번엔 얼굴의 좌표를 분석할 듯’, ‘파운데이션의 입자 크기를 논할 것 같다에 내 모든 걸 건다’ 같은 댓글들이 줄을 이었다. 그리고 그 시각, 백재하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다음 콘텐츠 소품으로 쓸 메이크업 브러쉬 세트를 진지하게 분석하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는 지난번과 똑같은, ‘재밌겠다’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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